이번 글에서는 하정우 감독의 신작 <로비> 그리고 그 안에서 강말금 배우가 만들어낸 조향숙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포스터부터 어딘가 심상치 않은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다 보고 나면 그 이유를 알게 되실 거예요.
왜 이 포스터가 이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 끝까지 확인해보세요!

<목차>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 강말금이 연기한 조향숙이라는 인물
3.명장면, 명대사 소개
4. 감상평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025년 4월 2일 개봉한 하정우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입니다. <롤러코스터>, <허삼관>에 이은 작품인데, 앞의 두 작품이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던 탓에 이번 작품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윤창욱은 라이벌 회사 대표 손광우의 뒷거래 때문에 번번이 기술과 기회를 빼앗깁니다. 회사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4조 원 규모의 국책사업을 따내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로비에 있어서는 한 수 위인 손광우가 이미 국토미래산업부 조향숙 장관을 포섭해 놓은 상태입니다. 창욱은 눈을 돌려 조 장관의 남편이자 실무를 쥐고 있는 최우현 실장에게 접근하고, 마침내 두 팀이 한날한시에 같은 골프장에 모이면서 진흙탕 로비전이 펼쳐집니다.
- 배우 하정우(윤창욱 역)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로비의 세계는 전혀 모르는 스타트업 대표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가장 더러운 싸움에 뛰어드는 인물입니다.
- 배우 박병은(손광우 역)
한때 창욱과 절친했던 사이지만 지금은 국책사업을 두고 정면으로 맞붙는 라이벌 대표입니다.
- 배우 김의성(최우현 역), 강해림(진세빈 역), 이동휘(박용훈 역)
김의성은 국토미래산업부 실장이자 조향숙의 남편 최우현을, 강해림은 최우현이 좋아하는 골프 선수 진세빈을, 이동휘는 뇌물을 받고 최우현을 소개해 주는 기자 박용훈을 연기했습니다.
- 배우 최시원, 차주영, 박해수
최시원은 조향숙이 좋아하는 왕년의 톱스타 마태수를, 차주영은 조향숙의 학교 후배이자 골프장 대표의 아내인 다미를 맡았습니다. 박해수는 두 로비팀이 만나는 골프장의 대표 역을 연기했습니다.
- 배우 강말금(조향숙 역)
국토미래산업부 장관이자 3선 국회의원 출신입니다. 최우현과는 부부 사이지만 현재 이혼 소송 중입니다. 이 영화에서 실무에는 관심이 없지만 야망은 누구보다 큰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 글에서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캐릭터 리스트만 봐도 벌써 스토리 라인이 얼마나 복작복작한지 감이 오시죠. 저는 이렇게 인물이 많은 영화일수록 오히려 한 명이 눈에 확 박히는 경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영화가 딱 그랬습니다.
2. 강말금이 연기한 조향숙이라는 인물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찬실, <고당도>의 선영, 그리고 최근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고혜진까지, 강말금이 그동안 맡아온 인물은 대체로 무언가를 짊어지고 버티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비>의 조향숙은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짊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짊어지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조향숙은 3선 국회의원 출신 장관입니다. 정책이나 실무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지킬 수 있는지는 누구보다 소름돋게 정확히 압니다. 남편 최우현과는 이혼 소송 중이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부부 행세를 하고, 좋아하는 옛날 스타를 골프장에 데려다주면 마음이 풀리는, 권력자이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데가 있는 인물입니다.
저는 강말금이 이 인물을 연기하는 방식이 진짜 흥미로웠습니다. 지금까지 봐온 그녀의 인물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쪽이었는데, 조향숙에게는 그 품위가 겉치레로 쓰입니다. 우아한 말투와 여유로운 태도 뒤에 자기 잇속만 챙기는 계산이 숨어 있다는 걸 관객이 알아채도록 만드는 연기입니다. 진지한 얼굴로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태연하게 하는 순간들이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역할에 이 배우 저는 신선하더라고요. 강말금 하면 계속 짠하고 애틋한 얼굴만 떠올렸었는데, 이번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줘서 저도 조금은 얼떨떨했던 것 같습니다.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 더럽게 싸움을 걸면, 어떻게 더럽게 싸우죠
영화의 태그라인이기도 한 이 대사는 순진하게 기술만 믿고 있던 창욱이 로비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을 압축합니다. 정직하게 경쟁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조향숙입니다. 그녀에게 로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한 일상입니다. 창욱이 물어야 할 방법을 이미 체화하고 있는 사람 앞에 서게 되면서, 이 영화가 그리려는 세계의 온도가 확실해집니다.
이 대사 하나로 영화 전체의 공기가 정해진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아 이건 단순히 웃긴 영화가 아니구나' 싶었던 것 같아요.
- 골프장 접대의 두 가지 원칙
창욱은 최우현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접대 골프를 준비합니다. 최우현이 좋아하는 골프 선수를 섭외해 분위기를 띄우고, 그의 실수나 부족한 실력을 눈감아 주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장면들이 우스운 이유는 과장이 아니라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골프장 로비라는 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세세하게 보여지는데, 그 디테일이 오히려 씁쓸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조향숙이 이 판을 이미 몇 수 앞서 짜놓은 사람이라는 것도 이 대목에서 서서히 드러납니다.
저는 이런 디테일한 장면을 볼 때마다 '저게 진짜로 저렇다고?' 라는 생각이 듭니다. 골프장 접대를 실제로 받아본적도 본적도 없지만 왠지 실제인 것 같아 더 리얼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 이혼 소송 중인 부부가 나란히 서 있는 골프장
조향숙과 최우현은 서로 으르렁대는 이혼 소송 중인 부부입니다. 그런데도 골프장에서는 아무 문제 없는 부부처럼 나란히 서 있습니다. 사적인 관계는 완전히 무너졌는데, 이해관계로 엮인 공적인 관계는 여전히 굳건하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 부부의 관계는 이 영화가 그리는 부패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도 신뢰도 남아 있지 않지만, 서로에게 쓸모가 있는 한 관계는 형식적으로 유지됩니다. 강말금과 김의성 두 배우가 이 어색하고 뒤틀린 부부의 온도를 능청스럽게 주고받는 장면들이 영화 후반부의 웃음을 책임집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관계라는 게 참 이렇게도 유지될 수 있구나 싶어 씁쓸했습니다. 혹시 나도 저런 형식적인 관계를 하나쯤 붙들고 있진 않나, 잠깐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4. 감상평
이 영화는 하정우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가 살아있는 코미디입니다. 그런데 소재가 국책사업 로비와 골프장 접대라는, 상당히 현실적인 정치·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웃기려고 만든 영화인데 웃고 나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실력과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로비를 해야 사업을 딸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나도 우리의 현실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강말금은 주연은 아닙니다. 하정우, 김의성, 박병은 등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조향숙은 상영시간을 놓고 보면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점이 이 배우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힘없이 버티던 찬실과 선영, 그리고 흔들리는 사람들을 붙들어주던 고혜진을 연기했던 배우가 이번에는 아무렇지 않게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을 태연하게 그려냅니다. 사람을 짊어지던 배우가 이번에는 사람을 이용하는 쪽에 섭니다.
강말금 배우는 이 영화 개봉 당시 MBC 라디오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뒤늦게 주목받은 이후, 독립영화의 서정적인 얼굴에서 상업영화의 코미디까지 폭을 계속 넓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필모그래피를 넓혀가는 배우를 보면 괜히 응원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22만 명이 조금 넘는 관객을 모았습니다. 큰 흥행은 아니었지만, 정치인이 부재한 시기에 개봉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게 읽혔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무거운 사회 문제를 가볍게 웃으며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그리고 강말금이라는 배우가 코미디에서는 어떤 얼굴을 보여주는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웃자고 본 영화인데 마음 한구석이 조금 씁쓸해지는 경험, 한 번쯤은 해보셔도 좋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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