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영화는 아니지만 강말금 배우가 출연했던, jtbc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알아보겠습니다.
처음엔 제목부터 이해하기 어렵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차츰 그 의미가 또렷해지는 이 드라마.
강말금 배우를 중점으로 한번 리뷰해보겠습니다

<목차>
1.드라마 소개와 등장인물
2.강말금이 연기한 고혜진이라는 사람
3.명장면, 명대사 소개
4.감상평
1. 드라마 소개와 등장인물
2026년 4월 18일부터 5월 24일까지 JTBC에서 방송된 12부작 토일드라마입니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를 쓴 박해영 작가의 신작이고, <동백꽃 필 무렵>의 차영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제목이 길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흔히 '모자무싸'로 줄여 불렸습니다. 개인적으로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를 의미 있게 본 사람으로써 많은 기대를 하면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영화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잘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일이 풀리지 않아 시기와 질투로 무너져가는 한 사람과, 그런 그를 어떻게든 끌어안아 보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목 그대로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습니다.
- 배우 구교환(황동만 역)
20년 동안 시나리오 열네 편을 쓰고도 끝내 감독으로 데뷔하지 못한 인물입니다. 이 드라마의 중심이자 가장 보기 불편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 배우 오정세(박경세 역)
영화사 고박필름 소속 감독이자 고혜진의 남편입니다. 동만과 오래된 친구 사이이면서 동시에 동만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상입니다.
- 배우 고윤정(변은아 역)
영화사 최필름의 기획 PD입니다. 과부하 상태로 일하다 바닥을 친 동만과 마주치게 되는 인물입니다.
- 배우 박해준(황진만 역), 배종옥(오정희 역), 한선화(장미란 역), 최원영(최동현 역)
박해준이 연기한 진만은 동만의 형으로, 한때 시를 쓰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용접공으로 살아갑니다. 배종옥은 국민배우 오정희를, 한선화는 그 딸이자 배우인 장미란을 연기했습니다.
- 배우 강말금(고혜진 역)
영화 제작사 고박필름의 대표이자 박경세의 아내입니다. 동만을 포함한 여덟 명의 오랜 친구 모임에 속해 있고, 그 모임에서 사실상 중심을 잡는 사람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2. 강말금이 연기한 고혜진이라는 사람
이 드라마에는 불안한 사람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다들 말이 많고, 자기 상태를 분석하려 들고,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고혜진은 거의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인물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저 침착해서가 아닙니다. 고혜진은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정확함 때문에 가장 냉정해 보이는 사람입니다. 한 매체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똑똑하고 제정신인 것 같아서 오히려 무서운 인물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이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혜진은 위로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대부분 맞습니다.
시청자들이 그녀의 대사를 두고 '맞는 말 퍼레이드'라고 불렀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다들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혼자 정신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하나쯤 있어야 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 자리가 고혜진이었습니다. 그래서 매 회차를 보고나면 가장 기억남는 인물이 이 고혜진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말금은 이 인물을 목소리로 완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연극 무대 경험에서 나온 단단한 발성과 정확한 딕션 덕분에, 그녀가 던지는 짧은 문장들이 허공에서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꽂힙니다. 눈빛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호흡은 절제되어 있는데, 그 안에 사람에 대한 애정이 분명히 담겨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정말 맛깔나게 연기 잘한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이 부분에는 후반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아지트 출입 금지 통보
가장 많이 회자된 장면입니다. 동만이 친구들이 모이는 아지트의 분위기를 계속 망가뜨리자, 고혜진이 그에게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통보합니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화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지도, 동만을 인신공격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지금 이 상태로는 여기 있을 수 없다고 담담하게 선을 그을 뿐입니다. 친하다는 이유로 무한정 받아주는 것이 우정이 아니라는 것, 때로는 선을 긋는 것이 상대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이 짧은 장면이 보여줍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어른이란 이런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 적당한 때 이혼하자
후반부에서 고혜진은 남편 경세에게 먼저 이혼을 제안합니다. 이유가 뜻밖입니다. 남편이 감독으로서 제대로 된 작품을 쓰려면 온갖 감정에 다 빠져봐야 하는데, 아내에게 검열을 받는 상태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못된 사람이 잘 쓰는 법인데 애매하게 착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사랑하지 않아서 하는 이별이 아니라, 상대를 놓아주기 위해 하는 이별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에는 미련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강말금은 이 장면에서 확신과 아쉬움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결정은 이미 내렸는데 마음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사람의 얼굴입니다. 오랜 부부이자 동료이자 친구인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가 이 한 장면에 다 들어 있습니다.
- 동만을 링 위에 세우다
고혜진은 동만을 감싸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를 링 위에 세웁니다. 듣기 좋은 말 대신 현실을 그대로 들이밀고, 결국 그의 영화가 끝까지 만들어지도록 밀어붙입니다.
여기서 이 드라마의 태도가 드러납니다. 무가치함과 싸우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링 위에 서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고혜진은 동만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를 계속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그녀가 아는 유일한 애정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 천 개의 문을 열고
종영 후 강말금 배우 본인이 소감에서 인용하기도 했던 대사입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기 이야기를 쓰러 가겠다는, 천 개의 문을 열고 나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드라마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결국 이것 아닐까 싶습니다. 무가치함은 극복되는 게 아니라 계속 열어야 하는 문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한 번 이겼다고 끝나지 않고, 다음 문이 또 있습니다. 다시 또 나아가며 맞이하는 무가치함을 이겨내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4. 감상평
박해영 감독의 전 작에서도 이미 충분히 느꼈지만, 역시나 이 모자무싸도 보기 편한 작품이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예민하고 말이 많고, 서로를 정확하게 아프게 합니다. 특히 초반의 황동만은 보고 있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게 이 드라마의 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꼴 보기 싫은 이유가 사실은 내 안에도 저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채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고혜진이라는 인물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다들 자기 무가치함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누군가는 배를 저어야 합니다. 고혜진은 그 노를 잡은 사람입니다. 그녀도 흔들리지 않았을 리 없는데, 그걸 드러내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저는 강말금이라는 배우를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처음 봤습니다. 마흔 살에 모든 걸 잃은 영화 프로듀서 찬실을 연기하던 사람이, 6년 뒤 이번에는 영화사 대표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무너짐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고당도>에서는 홀로 아버지를 간병하는 장녀를 연기했습니다. 세 작품 모두 무언가를 혼자 짊어진 여자입니다. 그런데 그 짊어짐의 결이 매번 다릅니다. 찬실은 짊어진 것을 잃고 헤맸고, 선영은 짊어진 것에 짓눌렸고, 고혜진은 짊어진 것을 감당해 냅니다.
강말금 배우는 종영 인터뷰에서 자신에게는 창작의 샘이 없어서 글 쓰는 일은 애초에 접었다고, 그래서 새로운 글을 써내는 사람에 대한 존경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데뷔 20년 가까이 무명으로 지내다 마흔이 넘어 알려진 배우가 하는 어쩌면 인생의 희노애락을 많이 겪어본 인생 선배가 하는 말이라 더 의미있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무가치함과 가장 길게 싸워본 사람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단단한 인물을 연기했다는 사실이 우연 같지 않습니다.
최종회는 5.3퍼센트의 시청률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으니 놓치신 분들은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다만 편하게 웃으며 보는 드라마는 아니니,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보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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