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2025년 12월 개봉한 영화 고당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전 글에서 본 강말금 배우가 출연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포스터에는 대립각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두 배우가 보입니다.
어떤 내용일지 아래에서 확인해 보세요!

<목차>
1. 등장인물 소개
2. 명장면, 명대사 소개
3. 제목 고당도와 감이 뜻하는 것
4. 감상평
1. 등장인물 소개
- 배우 강말금(선영 역)
강말금은 뇌사 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몇 년째 홀로 돌봐온 간호사 선영 역을 맡았습니다. 선영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아버지를 입원시켜 놓고 간병과 일을 동시에 감당해 왔습니다. 의식 없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안타깝게도 슬픔보다 피로가 먼저 읽힙니다. 아버지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견을 듣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남동생 일회를 부르지만, 사정을 알게 된 뒤 그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배우 강말금은 전 글에서 리뷰한 2020년 개봉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첫 장편 주연을 맡아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며 뒤늦게 주목받았습니다. 이번 고당도 영화로 데뷔 18년 차에 스크린의 중심에 섰던 것입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선영을 연기하며 자신의 언니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자신이 서른이 넘어 연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가족 부양을 대신 짊어졌던 언니의 모습을 이입시키면서 연기한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더 절실하고 진솔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면, 선영의 지친 표정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일 것 입니다.
- 배우 봉태규(일회 역)
봉태규는 사채업자에게 쫓겨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떠돌던 남동생 일회 역을 맡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오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부의금이라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습니다. 무능하고 뻔뻔하면서도 어딘가 딱해 보이는, 미워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봉태규는 제작보고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기도 했습니다. 백수로 지내던 시절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누나들보다 자신에게 조의금을 더 많이 나눠주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서글픈 상황인데 웃음이 나오더라는 그 고백을 알고 본다면 뭔가 좀 더 안쓰러운 눈빛으로 일회를 바라보게 될 것 입니다.
- 배우 장리우(효연 역), 정순범(동호 역)
장리우가 연기한 효연은 일회의 아내입니다.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부고 문자를 미리 작성해 두는데, 실수로 그 문자를 발송해 버리면서 모든 사건이 시작됩니다.
정순범이 연기한 동호는 이 가족의 아들입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공부해 의대에 합격했지만 아버지의 빚 때문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입학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어른들은 그를 가족을 다시 일으켜 세울 희망이라 부르지만, 정작 계획을 짜는 자리에서 그는 철저히 배제됩니다. 정순범 배우는 이 인물의 키워드를 허무함으로 놓고 연기를 했다고 하네요.
- 그 외
가족 중 가장 형편이 넉넉한 고모 금순 역은 양말복이 맡았습니다. 잘못 보내진 부고 문자를 받는 인물이자, 이 소동극의 첫 번째 표적이 되는 인물입니다.
2. 명장면, 명대사 소개
- 전산이 분리되어 있다는 허점
선영은 자신이 일하는 병원과 장례식장이 같은 계열사이면서도 전산 시스템은 따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즉 병원에 사망 기록이 없어도 장례식장에서는 빈소를 차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그렇게 시작됩니다.
이 설정이 놀라운 이유는 황당해서가 아니라 너무 그럴듯해서입니다.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시스템의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세상에서, 이 가족은 그 틈을 유일한 출구로 삼습니다. 영화는 이들을 사기꾼으로 몰아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왜 이들에게 남은 방법이 이것뿐이었는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와 그럴수도 있겠다.. 내가 다녀온 장례식은 혹시?" 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게 되더라고요.
- 옥상에 혼자 서 있는 동호
어른들이 아래층에서 역할을 나누고 동선을 짜는 동안, 정작 이 모든 일의 명분인 동호는 옥상에 홀로 서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다는 계획에서 자신만 빠져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의대 합격까지 그가 견뎌낸 시간은 영화에서 철저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족들도 잘했다는 말 한마디로 넘어갈 뿐입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이 영화가 진짜로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가족을 위한다는 말이 어떻게 한 사람을 가장 외롭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세 번째 장례식
계획은 점점 커집니다. 고모 한 사람을 상대로 시작했던 일이 조문객 전체를 부르는 규모로 번지고, 마침내는 일회 자신의 가짜 장례식까지 치러집니다. 사채업자를 따돌리기 위해 그가 죽었다고 알린 사람은 다름 아닌 아들 동호였습니다.
일회는 좁은 방 안에 홀로 떠밀려 들어갑니다. 선영이 오랜 세월 아버지 곁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낌새를 알아챈 사채업자들이 가족을 붙잡고 행방을 캐묻자, 결국 견디지 못한 일회가 뛰쳐나와 끌려갑니다. 웃기려고 시작한 장면이 어느 순간 웃을 수 없게 되는 이 황당무계한 전환이 이 영화의 킥이라고 생각합니다.
- 떫어?
모든 소동이 끝나고 남은 네 사람이 감을 나눠 먹습니다. 일회가 사 온 철 지난 감은 여전히 떫습니다. 선영이 묻습니다. "떫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짧은 장면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했다고 봅니다. 이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빚도 그대로고 등록금도 없고 아버지도 여전히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그 떫은 감을 아무 말 없이 같이 씹고 있습니다. 맛이 어떤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삼키고 있다는 사실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감을 씹듯이 영화를 곱씹어보는 시간을 주며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넘겨주는 듯 했습니다.
3. 제목 고당도와 감이 뜻하는 것
제목이 왜 고당도인지 궁금해하실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 포스터만 보고 당연히 당도가 높다는 뜻으로 생각했는데, 좀 더 숨겨진 의미도 있더라고요. 고당도는 말 그대로 당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감은 하나도 달지 않습니다. 철이 지나 떫기만 합니다. 달아야 할 것이 달지 않은 상태, 그것이 이 가족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추가로 권용재 감독은 이 제목이 중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고의 고에 도달할 당도를 붙여 죽음에 이르렀다는 뜻이 되고, 동시에 부고에 쓰이는 고가 고향을 뜻하는 글자와 같아 고향에 당도한 가족의 이야기라는 의미도 담았다고 합니다. 그냥 유추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도 있긴하네요.
영어 제목은 The Price of Goodbye입니다. 작별에 매겨진 값이라는 뜻이니, 부의금을 노려 장례식을 앞당기는 이 이야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4. 감상평
이 영화는 권용재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입니다. 감독이 2021년에 만든 단편 <조의>를 장편으로 확장한 작품이고, 배우 강말금은 그 단편에도 함께했습니다. 그러니까 감독과 배우가 5년 가까이 붙들고 있던 이야기가 이 영화인 셈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블랙코미디가 맞습니다. 실제로 초중반은 마치 케이퍼 무비처럼 계획을 짜고 역할을 나누는 과정이 경쾌하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웃다가 문득 등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뭘 위해서 이런 짓까지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돌봄은 오롯이 한 사람에게만 떨어져 있었고, 빚은 갚을 방법이 없었고, 성적이 좋아도 등록금이 없으면 대학에 갈 수 없었습니다. 어디에도 이들을 지지해주는 장치가 없습니다. 영화는 이 가족을 비난하지도, 그렇다고 옹호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관객들에게 이 웃픈 장면을 88분 동안 지켜보게 만들 뿐입니다.
가장 아프게 남은 건 이 이야기가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었습니다. 가족이라서 서로를 붙잡아 주기도 하지만, 가족이라서 서로를 끝까지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동호가 아버지를 죽었다고 신고하는 장면에서 그 양면성이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가족에게서 벗어나려는 행동이 동시에 가족을 따라하게 돼 버리는 것이죠.
이 영화는 2025년 12월 10일 개봉했지만 극장 관객은 5천여 명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국내 영화 순위 2위까지 올라가며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에도 초청되었던 작품입니다. 좋은 영화가 극장에서 묻혔다가 다시 발견되는 경우를 볼 때마다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가볍게 웃고 싶은 날에 보실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말이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걸 아시는 분이라면, 이 88분이 오래 남을 것입니다. 2026년 8월 현재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으니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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