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영화 <로기완>과, 그 안에서 이상희 배우가 완성한 선주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포스터만 봐도 이미 뭔가 꾹 눌러 참고 있는 표정이 느껴지는데요, 그 참는 얼굴 뒤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끝까지 확인해보세요!

<목차>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 실화에서 출발한 이야기, 로기완의 역사적 배경
3. 이상희가 연기한 선주라는 인물
4. 명장면, 명대사 소개
5. 감상평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024년 3월 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작품으로,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합니다. 김희진 감독의 상업 장편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탈북자 로기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가진 것 하나 없이 벨기에에 도착합니다. 그가 벨기에까지 오게 된 유일한 이유는 어머니 옥희입니다. 낯선 땅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기완은,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벨기에 국적의 사격 선수 마리와 얽히게 되고 서서히 서로에게 끌립니다.
- 배우 송중기(로기완 역)
가진 것 하나 없이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입니다. 유일한 희망인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 배우 최성은(마리 역)
벨기에 국적을 가진 한국인 사격 선수입니다.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다 기완과 악연으로 얽힌 뒤 의도치 않게 사랑에 빠집니다.
- 배우 김성령(옥희 역), 서현우(은철 역), 와엘 세르숩(씨릴 역)
김성령은 기완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되어주는 어머니 옥희를 연기했습니다. 서현우는 기완의 외삼촌 은철로, 기완이 연길에서 벨기에까지 떠날 수 있도록 돕는 인물입니다. 와엘 세르숩은 벨기에에서 바를 운영하는 씨릴을 맡았습니다.
- 배우 이상희(선주 역)
기완이 벨기에 정육 공장에서 일하며 만난 조선족 출신 동료입니다. 낯선 땅에서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이방인 기완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준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이렇게 인물을 쭉 나열해놓고 보니 다들 저마다의 사연 하나씩은 짊어지고 있네요. 저는 이런 인물 구도를 보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실화에서 출발한 이야기, 로기완의 역사적 배경
이 영화는 완전한 허구가 아닙니다. 원작인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유럽을 떠돌던 실제 탈북자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작가는 이니셜로만 남아 있던 한 탈북자의 인터뷰와 기록을 접한 뒤, 그 사람의 흔적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 속 화자가 탈북자 로가 남긴 일기를 구해 그의 발자취를 되짚는 구조 자체가, 작가 본인이 실제 자료를 따라가며 글을 썼던 과정과 유사합니다.
소설 속 로기완은 함경북도 온성의 한 작업반에서 태어나 자란 인물로 그려집니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이 겪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가 이야기의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극심한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이 국경을 넘던 시기이고, 이 소설과 영화가 다루는 탈북과 난민 인정 절차의 고단함은 이 역사적 맥락 위에서 훨씬 무겁게 다가옵니다.
영화는 소설보다 로맨스의 비중을 크게 늘리는 방향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소설의 중심은 탈북자의 흔적을 뒤쫓는 방송작가 '나'의 시점이었지만, 영화는 로기완 본인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마리와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원작이 지닌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결과, 영화가 택한 극적인 로맨스 사이의 이 간극이 관람 후 평가가 엇갈리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것 또한 감독의 성향이고 누군가의 취향 부분이기 때문에 존중도 합니다.
다만 그 각색의 방향과 별개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이 영화의 핵심 설정만큼은 실제 난민 인정 절차의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가져온 부분입니다.
저는 이 배경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떠올려보니 웃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둘 늘어나더라고요. 실화가 깔려 있다는 걸 알면 같은 장면도 다르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3. 이상희가 연기한 선주라는 인물
선주는 겉으로는 틱틱대고 무뚝뚝합니다. 그런데 그 말투만으로 기완이 동북 3성 출신이 아니라 탈북자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챕니다. 낯선 땅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치입니다. 선주 역시 생계를 위해 조선족 출신이라는 신분을 안고 이 나라에 정착해야 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기완이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빨리 알아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상희는 이 인물을 이북 사투리부터 눈빛, 표정, 걸음걸이까지 통째로 흡수해서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 이전에도 <연애담>, <정말 먼 곳>, <데시벨> 같은 영화와 <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 같은 드라마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인물들을 연기해 온 배우입니다. '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역보다 감독의 의도와 대본이 흥미로운지를 작품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그녀의 연기관을 알고 나면, 선주라는 인물에게 이렇게까지 밀도 있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도 짐작이 갑니다.
무엇보다 선주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무거운 공기를 잠시 풀어주는 인물입니다. 탈북자로서 온갖 벽에 부딪히는 기완의 이야기가 계속 무겁게 흘러가는 와중에, 선주와 기완이 나누는 투박한 우정은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쌓아온 신뢰가 뒤로 갈수록 다른 무게로 바뀝니다.
이 인물이 웃음을 담당하다가 이렇게 무거운 쪽으로 넘어갈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조금은 방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4. 명장면, 명대사 소개
이 부분에는 후반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정육 공장에서 건넨 첫 손길
기완이 벨기에 정육 공장에 취직한 초반, 아무도 그에게 곁을 내주지 않습니다. 그런 그에게 선주가 먼저 말을 겁니다. 퉁명스러운 말투인데 그 안에 챙기는 마음이 묻어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완은 이곳에 오기까지 수없이 거절당하고 의심받았습니다. 선주는 그를 캐묻지 않고 그냥 옆에 서줍니다. 이방인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위로가 아니라 이런 사소한 곁이라는 걸 이 장면이 조용히 보여줍니다.
이런 작은 다정함이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장면 하나로 선주라는 사람을 완전히 믿게 됐던 것 같습니다.
- 증언을 부탁하는 기완, 흔들리는 선주
기완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법정에서 자신이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사실을 증언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가 유일하게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선주입니다. 선주는 그 부탁을 받고 흔들립니다.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 기완에게는 삶을 좌우할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선주에게도 사정이 있습니다. 자신도 이방인으로 이 땅에서 겨우 자리를 잡은 사람이 법정에 나서서 얼굴과 신분을 드러낸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선주가 짓는 표정에는 기완을 돕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선주를 마냥 응원할 수도, 그렇다고 다그칠 수도 없어서 계속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혹시 나라도 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 법정에서 진실을 묻어버리다
결국 선주는 법정에 서지만, 알고 있는 진실을 온전히 증언하지 못합니다. 진실을 알면서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고 맙니다. 기완의 든든한 편이었던 사람이 내린 이 비겁한 선택은 보는 이들에게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선주를 미워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녀 역시 이 낯선 땅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이었고, 진실을 말하는 순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을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정의와 생존이 부딪히는 순간, 사람은 언제나 정의를 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이상희는 이 순간을 과장된 죄책감이 아니라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드는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장면 하나로 저는 선주라는 인물을 오래 미워하지 못하는 쪽을 택하게 됐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약한 존재구나,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5. 감상평
이 영화는 초중반과 후반부의 온도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는 평이 많습니다. 초중반은 탈북자가 낯선 땅에서 겪는 처절한 생존기에 가깝고, 후반으로 갈수록 로맨스의 비중이 커집니다. 저 역시 이 지점에서 아쉬움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쉬움 속에서도 선주라는 인물만큼은 끝까지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분명 기완과 마리의 이야기지만, 저에게는 선주가 이 영화의 진짜 질문을 쥐고 있는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과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부딪힐 때, 우리는 대체로 선주처럼 행동합니다.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완전히 손을 내밀지도 못한 채로 말입니다. 이 영화가 그리는 여러 인물 중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사람이 선주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굿윌헌팅>이 떠올랐습니다. 두 작품 모두 낯선 사람이 낯선 사람을 알아봐 주는 순간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다만 <굿윌헌팅>의 숀 교수가 윌의 재능을 알아보고 곁을 지켜주는 어른이었다면, 선주는 자신도 언제든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손을 내미는 쪽에 가깝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움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버티는 도움이라는 점에서, 저는 오히려 이쪽이 더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이상희 배우는 이 역할로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조연상과 제45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두 개의 큰 시상식에서 동시에 인정받았다는 건 이 인물이 짧은 분량 안에서도 그만큼 선명하게 새겨졌다는 뜻일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 로기완이라는 영화를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이상희 배우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떨리는 말투로 송중기 배우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그 모습을 보고 영화에 궁금증이 생겨 찾아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전에도 <연애담>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받은 이력이 있는데, 신인상에서 조연상까지, 매번 다른 얼굴로 존재감을 남겨온 배우입니다.
2026년 8월 현재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되어 접근성도 좋은 편입니다. 탈북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기완과 마리의 로맨스를 기대하고 보셔도 좋지만, 저는 선주라는 인물을 마음에 담고 보시길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완벽하게 정의롭지 못했던 순간이 자신에게도 있었다면, 이 인물을 통해 스스로를 조금은 용서하게 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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