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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르나르다 알바, 억누른 마음은 반드시 터져 나온다

by 라이언빌 2026. 8. 17.

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2021년 4월에 공개된 <베르나르다 알바>와, 넷째 딸 마르띠리오를 연기한 배우 김국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괜히 숨이 턱 막혔습니다.

어두운 화면 속에 여자들만 빼곡히 서 있는 그 구도가 이미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가장 조용했던 딸이 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되는지, 아래에서 같이 확인해보세요!

 

전에 리뷰했던 <문워크>에서 제사로만 남아 있던 건석의 아내를 연기했던 배우가 바로 김국희입니다.

그때는 얼굴보다 부재로 먼저 기억되는 인물이었는데, 이번 글의 마르띠리오는 내내 화면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인물입니다.

같은 배우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워진 사람'을 연기한다는 점이 저는 참 묘했습니다.

 

베르나르다 알바 (2021. 4) 포스터
베르나르다 알바 (2021. 4) 포스터

 

 

<목차>

1. 등장인물 소개

2. 명장면, 명대사 소개

3. 삽입 O.S.T 소개

4. 감상평

 

1. 등장인물 소개


- 배우 김국희(넷째 딸 마르띠리오 역)

 김국희는 베르나르다의 넷째 딸 마르띠리오 역으로 출연합니다. 마르띠리오는 이 집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입니다. 언니들처럼 대놓고 불평하지도 않고, 막내처럼 반항하지도 않습니다.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어머니가 말하라고 할 때만 말합니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존재감이 가장 옅은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르띠리오는 이 작품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녀에게도 한때 혼담이 있었고, 그 혼담은 어머니의 손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언니의 약혼자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마음을 안으로만 밀어 넣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변합니다. 마르띠리오의 마음은 결국 질투가 되고, 질투는 마지막에 칼이 됩니다. 저는 이 인물이 이 집의 진짜 얼굴이자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만든 감옥에서 가장 오래 참은 사람이 가장 무서운 방식으로 확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김국희는 이 인물을 1도 소리치지 않고 만들어냅니다. 창밖의 남자들을 다들 내다볼 때 그녀만은 관심 없다는 얼굴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슬며시 그쪽으로 갑니다. 이 짧은 동작 하나에 마르띠리오의 인생이 전부 들어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몸이 어떤 모양인지 이 배우는 소름돋게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노래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감정을 시원하게 뽑아내지 않고 목 안에서 한 번 눌렀다가 내보냅니다. 그 눌린 소리 때문에 관객은 마르띠리오가 참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녀가 감정을 터뜨릴 때 그 파괴력이 훨씬 큽니다. 정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완급 조절을 잘한다고 하죠. 모든 부분을 질러서 부르는게 아니라 어떨땐 작게 어떨땐 크게 이런 완급 조절만으로도 좀 더 몰입이 더 잘되는 것 같았습니다.

 

 김국희는 1985년생으로 대전 출신입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 겨울에 뮤지컬 "짱따"로 대학로에 데뷔했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무대에서 경력을 쌓아온 배우입니다. 중간에는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일을 겪고 1년간 무대를 떠났다가 2008년에 돌아왔습니다. 이십 대 초중반에는 외모와 목소리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배우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는 2018년 예그린뮤지컬어워드와 2019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연달아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자기 자리를 확 만들어냈습니다. 노인 역할을 워낙 잘해서 할머니 역의 장인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배우가, 이 작품에서는 사랑을 갈망하는 젊은 여자를 연기합니다. 그 낙차가 이 배역을 더 특별하게 만듭니다. 최근에는 문워크, 잠, 검은 수녀들 등 스크린에서도 꾸준히 얼굴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도 이 김국희 배우를 여러 많은 드라마, 영화에서 보긴 봤었는데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확실히 인지하고 누구인지 찾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안 될 거라는 말을 이십 대 내내 듣고도 무대에 남아 있었다는 대목에서 저는 잠깐 멈췄습니다. 참는 인물을 이렇게까지 잘 아는 배우가 된 데에는 아마 이유가 있었을 것 입니다.

 

- 배우 정영주(어머니 베르나르다 알바 역)

 정영주는 남편을 잃고 집안의 절대 권력이 된 베르나르다 역으로 출연합니다. 그녀는 8년상을 선포하고 다섯 딸을 집 안에 가둡니다. 무섭지만 단순한 악인은 1도 아닙니다. 그녀 역시 세상의 평판이라는 감옥에 갇힌 사람입니다.

 

 가둔 사람도 갇혀 있다는 사실이 이 인물을 더 서늘하게 만듭니다. 이런 평판에 죽어라 매달리는 사람이 이해가 안되면서도 또 반대로 내가 그럴때도 있다는 생각에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 배우 오소연(막내딸 아델라 역)

 오소연은 유일하게 어머니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막내 아델라 역으로 출연합니다. 아델라는 마르띠리오가 하지 못한 모든 것을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매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거울입니다.

 

 두 사람의 케미가 이 작품에서 가장 아픈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닮은 사람끼리 제일 미워지는 일, 저는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 배우 황석정(할머니 마리아 호세파 역)

 황석정은 다락방에 갇힌 베르나르다의 어머니 마리아 호세파 역으로 출연합니다. 미쳤다는 이유로 격리된 그녀가 이 집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서늘합니다.

 

 가장 정신 나갔다는 사람이 가장 멀쩡한 말을 한다는 설정, 저는 이 대목에서 좀 웃프면서도 오래 씁쓸했습니다.

 

2. 명장면, 명대사 소개


- 창밖을 보지 않는 척하는 여자

 자매들이 창밖의 남자들을 구경하며 들뜹니다. 그런데 마르띠리오는 그 무리에 끼지 않습니다.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다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슬며시 창쪽으로 눈을 돌립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이 작품 전체를 소름돋게 정확히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집의 딸들이 잃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욕망을 인정할 권리입니다. 원하면 안 되는 것을 오래 원하다 보면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자기에게도 숨기게 됩니다. 김국희는 이 장면에서 대사 한 줄 없이 그 상태를 보여줍니다. 무심한 표정과 몸의 방향이 서로 어긋나 있는 그 짧은 순간이 오래 남았습니다.

 

 "와, 나도 저런 적 있는데.." 싶어서 괜히 뜨끔했습니다. 관심 없는 척하느라 더 티가 났던 시절,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것 같습니다.

 

- 사라진 사진

 언니 앙구스티아스가 약혼자의 사진이 없어졌다며 집안을 뒤집습니다. 소동 끝에 그 사진은 마르띠리오의 침구 사이에서 발견됩니다. 마르띠리오는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합니다.

 

 장난일 리가 1도 없습니다. 그것은 마르띠리오가 자기 마음을 처음으로 행동에 옮긴 순간이었습니다. 훔칠 수 있는 것이 사진 한 장뿐이었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그리고 들켰을 때 그녀가 선택한 대답이 장난이었다는 점이 더 슬픕니다. 평생 자기 감정을 축소해서 말하도록 훈련된 사람의 반사적인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에서 김국희 배우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담담합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관객을 더 불편하게 만듭니다.

 

 저도 어쩌다 마음을 들켰을 때 제일 먼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말이 제일 큰 거짓말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 알았습니다.

 

- 언니를 무너뜨린 한마디

 밤중에 총성이 울리고, 아델라는 자기 연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마르띠리오 앞에 섭니다. 그때 마르띠리오는 그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델라는 방으로 들어가고, 다시는 나오지 못합니다.

 

 이 순간의 마르띠리오는 복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복수의 대상이 언니인지, 어머니인지, 아니면 평생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기 자신인지 알 수 없습니다. 김국희는 이 대사를 승리의 표정으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겁에 질린 얼굴로 보여집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뱉었는지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얼굴입니다. 억눌린 사람이 마침내 힘을 쥐었을 때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 이 장면만큼 소름돋게 정확히 보여주는 대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문장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이 장면에서 처음 실감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집중하며 보게된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3. 삽입 O.S.T 소개

 

 이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반주보다 사람의 몸에서 나는 소리가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발을 구르는 소리, 손뼉 소리, 여성 배우 열 명이 겹겹이 쌓아 올리는 화음이 곧 음악이 됩니다. 플라멩코의 리듬이 계속 바닥을 두드리는데, 그 소리가 흥겹기보다 위협적으로 들립니다.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마르띠리오의 노래는 그 안에서도 유독 낮게 깔립니다. 화려한 고음으로 감정을 터뜨리는 대신 낮은 음역에서 웅크린 채 버팁니다. 노래 한 곡이 인물의 처지를 그대로 설명해 주는 진짜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마이클 존 라키우사가 로르카의 희곡을 스무 곡의 뮤지컬 넘버로 옮긴 것입니다. 한국 초연은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음악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받았습니다.

 

 발 구르는 소리가 이렇게 무섭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저는 이 작품에서 배웠습니다.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낼 수 있는 소리는 결국 제자리를 두드리는 소리뿐인 것 같습니다.

 

4. 감상평

 

 이 작품은 정동극장 무대를 그대로 담은 공연실황 영화입니다. 그래서 극장에서 볼 때는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다니지만 편집으로 감정을 만들어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스스로 붙잡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방식이 이 작품과 꽤나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도망갈 곳 없는 무대가 도망갈 곳 없는 이야기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중심에 놓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비긴 어게인이나 스타 이즈 본을 떠올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 두 작품에서 음악은 인물을 세상 밖으로 데려가는 통로입니다. 반면 이 작품에서 음악은 인물을 가두는 벽에 가깝습니다. 노래할수록 이들은 더 갇힙니다. 같은 음악 영화를 찾으시는 분이라면 이 차이를 미리 알고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조용한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무대 위에는 크게 소리치는 인물이 여럿 있습니다. 어머니도 소리치고 막내딸도 소리칩니다. 그 사이에서 마르띠리오는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극이 끝나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얼굴이 그녀입니다. 참는 연기는 하는 연기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가 안에서 스르륵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국희 배우라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다 생각합니다.

 

 억눌린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방향만 바뀔 뿐입니다. 이 작품은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아주 잔인하게 보여줍니다. 러닝타임 107분 동안 남자 배우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 집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바깥 세상의 시선입니다. 무대 예술을 어렵게 느끼셨던 분이라도 이 작품은 충분히 따라가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고 난 뒤로, 조용한 사람의 침묵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이 없다는 건 할 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말할 자리를 얻지 못했다는 뜻일 때가 많으니까요. 오늘은 제 주변에서 제일 말수가 적은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국희라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처음 만나시는 분께도, 그 안부를 배우는 좋은 입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