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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이프라인, 땅 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by 라이언빌 2026. 8. 15.

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2021년 5월에 개봉한 영화 <파이프라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포스터를 보면 다섯 명이 나란히 서서 잔뜩 폼을 잡고 있는데, 저는 그 배치부터가 좀 재미있었습니다.

앞줄과 뒷줄이 이 팀의 운명을 미리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땅속 지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왜 가장 먼저 사라지는지, 아래에서 같이 확인해보세요!

 

 

파이프라인(2021. 5.) 포스터
파이프라인(2021. 5.) 포스터

 

 

<목차>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 유승목이 연기한 나과장이라는 인물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4. 감상평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021년 5월 26일 개봉한 유하 감독의 작품입니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을 만든 감독의 6년 만의 복귀작이자, 첫 범죄 오락물이기도 합니다.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빼돌리는 도유 범죄라는, 국내 영화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은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하이스트 영화입니다. 비슷한 영화로 도굴이 있습니다.

 

 송유관이 터지지 않을 만큼 소름돋게 정확한 힘으로 드릴을 다루는 업계 최고의 천공기술자 핀돌이는, 대기업 후계자 건우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습니다. 수천억 원어치의 기름을 빼돌리자는 제안입니다. 핀돌이는 인생 역전을 꿈꾸며 팀을 꾸립니다. 그의 기술을 카피해 사기를 치고 다니던 용접공 접새, 땅속 설계도를 전부 꿰고 있는 전직 공무원 나과장, 원양어선에서 다져진 괴력의 소유자 큰삽까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이 위험한 작전에 합류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하나로 묶은 목적이 사실은 저마다 다르다는 게 서서히 드러나면서,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확 흘러갑니다.

 

- 배우 서인국(핀돌이 강세돌 역)

 도유 업계 최고의 천공기술자입니다. 고급 양복을 갖춰 입고 향수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는, 자기 일에 자부심이 강한 인물입니다.

 

- 배우 이수혁(황건우 역)

 이 도유 작전을 설계한 대기업 후계자입니다. 팀을 하나로 모은 장본인이지만, 실제로는 이들 모두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인물입니다.

 

- 배우 음문석(접새 역), 태항호(큰삽 박갑성 역)

 음문석은 핀돌이의 기술을 흉내 내며 사기를 치던 용접공 접새를, 태항호는 원양어선을 오래 타며 남다른 괴력을 갖게 된 큰삽을 연기했습니다.

 

- 배우 배다빈(카운터 송은주 역), 배유람(만식 역)

 배다빈은 이 모든 인물을 감시하는 정체불명의 인물 카운터를, 배유람은 만식을 연기했습니다.

 

- 배우 유승목(나과장 역)

 본명은 나춘식으로, 전직 공무원 출신입니다. 지하의 배관과 설계도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어 이 작전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캐릭터 이름만 봐도 이 팀의 케미가 대충 그려지지 않나요. 저는 핀돌이, 접새, 큰삽 사이에 끼어 있는 '나과장'이라는 이름이 유독 짠하게 읽혔습니다..

 

2. 유승목이 연기한 나과장이라는 인물

 

 나과장은 이 팀에서 가장 실무적인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핀돌이가 화려한 기술로 시선을 끄는 인물이라면, 나과장은 그 기술이 실제로 발휘될 자리, 즉 땅 밑의 지도를 그려주는 사람입니다. 전직 공무원이라는 이력이 이 역할에 진짜 설득력을 더합니다. 오랫동안 관공서에서 지하 시설물 관련 업무를 다뤄봤을 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정보와 감각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인물에게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사연이 있습니다. 위험한 범죄에 발을 들이는 이유가 단순한 한탕주의가 1도 아니라, 그 상실과 맞닿아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이스트 영화에서 이런 사연은 흔한 장치이지만, 유승목은 이걸 신파로 부풀리지 않고 인물의 배경 정보 정도로 담담하게 처리합니다. 그래서 나과장이라는 사람은 시종일관 실무적이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다가도, 그 침착함 뒤에 자신만의 절박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관객이 스르륵 눈치채게 만듭니다.

 

 결국 나과장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건우의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땅 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정작 땅 위의 인간관계 속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는 셈입니다. 유승목은 전에 리뷰했던 <데드라인>의 손규식, <문워크>의 건석, <다우렌의 결혼>의 송 대표까지 대체로 현실적이고 신중한 인물을 연기해 왔는데, 나과장 역시 그 결을 따라가면서도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다른 무게를 지닙니다.

 

 저는 이 유승목 배우가 나오면 이제 믿고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일수록 이야기가 그를 어떻게 대하는지 자꾸 눈이 가게 되더라고요.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이 부분에는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지하 설계도를 펼쳐놓고

 나과장이 팀에 합류해 지하 배관도를 펼쳐놓고 작전의 경로를 설명하는 장면들입니다. 화려한 액션은 없지만, 이 작전이 실제로 가능한 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저는 이런 장면들이 영화를 좀 더 몰입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도둑질이라는 것이 그저 대담함만으로 되는 게 1도 아니라, 누군가의 축적된 전문성이 있어야 성립한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나과장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무슨일을 하더라도 그 전체 과정을 정확히 알고 하는 것은 정말 강력한 힘이 됩니다. 그렇기에 판을 진짜로 아는 사람은 목소리가 클 필요가 없더라고요.

 

- 저마다 다른 목적이 드러나는 순간

 작전이 진행될수록, 팀원들이 이 일에 뛰어든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는 게 하나둘 밝혀집니다. 핀돌이는 자기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 하고, 건우는 애초에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과장의 목적이 상대적으로 가장 소박하고 절실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이나 야망을 좇는 동안, 그는 아내를 잃은 뒤 남은 삶을 어떻게든 추스르려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사람이 결국 이 소동의 가장 먼저 희생되는 자리에 놓인다는 게, 이 영화가 은연중에 말하는 씁쓸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느정도는 예상이 갔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소 식상한 느낌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장면이 있어야 영화는 만들어 지는 것 같습니다.

 

- 건우의 총에 쓰러지다

작전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나과장은 결국 건우의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이 팀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했던 사람이 가장 먼저 제거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죽음이 이 영화가 그리는 신뢰의 허약함을 소름돋게 정확히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한 팀으로 묶였을 때, 가장 쓸모가 확실했던 사람이 오히려 가장 쉽게 버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액션 신들 사이에서, 나과장의 퇴장은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무거운 장면으로 보여집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한참 말이 안 나왔습니다. 쓸모로만 사람을 부르는 자리는 결국 쓸모가 끝나는 순간 사람도 놓아버린다는 걸, 이렇게 차갑게 보여줄 줄은 몰랐습니다.

 

4. 감상평

 

 이 영화는 송유관 기름 절도라는 낯선 소재로 눈길을 끕니다. 다만 하이스트 영화라는 장르가 성립하려면 중심을 잡아주는 주인공과 그를 따르는 팀이 긴박하게 극을 이끌어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는 아쉬움을 지적하는 평이 꽤나 많았습니다. 신선한 소재에 비해 극을 완성하는 힘은 다소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나과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일부는 분명히 느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범죄극에서 조연들은 대체로 기능으로만 소비됩니다. 기술을 제공하는 사람, 힘을 제공하는 사람,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나과장에게는 아내를 잃었다는 배경이 붙어 있고, 그 배경이 그를 단순한 기능 이상의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유승목이 연기해 온 인물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진짜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재난 현장을 지키고, 가족을 떠나고, 회사의 요구를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땅 밑을 훤히 꿰고 있다가 세상을 떠나는 인물까지. 하나같이 화려하지 않은 자리에서 실질적인 무게를 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과장은 그 계보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서인국, 이수혁, 음문석이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흥행이나 평가 면에서는 크게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는 도유 범죄라는 소재 자체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그리고 화려한 주인공들 사이에서 조용히 자기 몫을 다하다 사라지는 인물에게 마음이 가는 분이라면 2026년 8월 현재 넷플릭스와 티빙에서 한 번 찾아보실 만합니다. 108분의 러닝타임 동안,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 입니다.

 

 땅 밑을 훤히 아는 사람이 정작 땅 위에서는 아무 지도도 갖지 못했다는 것, 저는 그 대목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 곁에도 조용히 자기 몫을 하고 있는 나과장 같은 분들이 분명 있을 텐데, 그분들 이름 정도는 제대로 불러드리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