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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문워크, 앞으로 걷는 것처럼 보여도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있다

by 라이언빌 2026. 8. 13.

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2025년 1월에 개봉한 영화 <문워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저는 제목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문워크라니, 가족 이야기에 이 단어를 붙여놓은 감각이 꽤나 얄밉게 좋더라고요.

앞으로 걷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뒤로 물러나는 춤, 그게 왜 하필 이 가족의 이름이 되었는지 아래에서 같이 확인해보세요!

 

문워크(2025. 1.) 포스터
문워크(2025. 1.) 포스터

 

<목차>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 유승목이 연기한 건석이라는 인물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4. 감상평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025년 1월 22일 개봉한 신현규 감독의 작품입니다. 원제는 MOON's walking으로,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먼저 소개되었고 정희 역의 황지아가 이 작품으로 장편배우상을 받았습니다.

 

 16살 정희에게 1년 중 가장 힘든 날은 할머니의 제삿날입니다. 그날이 되면 집 나간 할아버지를 찾을 생각은 안 하고 제사만 꼬박꼬박 지낸다며 고모할머니에게 야단을 맞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신이 태어난 날 할아버지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정희는 이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만 같습니다. 늘 가족 탓만 하는 엄마도 불만입니다. 결국 정희는 불행의 비밀을 풀고 엄마의 사춘기를 끝내겠다며, 사진 속 할아버지를 찾아 가출을 감행합니다.

 

- 배우 황지아(정희 역)

 엄마가 사진 속 얼굴을 죄다 잘라내 버릴 정도로 미워하는 할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16살 여학생입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잃어버린 가족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갑니다.

 

- 배우 김민경(유선 역), 송동환(윤권 역)

 김민경은 정희의 엄마 유선을, 송동환은 삼촌 윤권을 연기했습니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은 각각 김이룬과 송주호가 맡았습니다.

 

- 배우 김국희(건석 아내 역), 차희재(호정 역), 장마레(공양주 보살 역)

 김국희는 이미 세상을 떠나 제사로만 남아 있는 건석의 아내를 연기했습니다.

 

- 배우 유승목(건석 역)

 정희가 애타게 찾는 할아버지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손녀와 마주하게 되는 인물이자, 가족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끝까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줄거리만 읽었는데도 저는 명절마다 어색해지던 우리 집 밥상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도 이름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 한 명쯤 있는 집, 생각보다 많지 않나요..

 

2. 유승목이 연기한 건석이라는 인물

 

 건석은 이 영화에서 가장 늦게 등장하는 인물이면서, 영화 전체를 움직이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정희가 길을 나선 이유가 그이고, 엄마 유선이 오랫동안 사춘기에 머물러 있는 이유도 그입니다. 사진 속 얼굴이 잘려 나갈 정도로 미움받는 사람이 이야기의 목적지에 놓여 있습니다.

 

 진짜 흥미로운 건 이 인물이 등장하기 전까지 관객이 건석을 판단할 근거가 가족들의 원망뿐이라는 점입니다. 손녀가 태어난 날 사라진 남자, 아내의 제사에도 나타나지 않는 남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한 건석은 그 원망만으로는 1도 설명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떠난 데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남은 가족들이 짐작해온 것과 소름돋게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건석이 유승목이라는 배우의 강점이 가장 잘 쓰인 배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인물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해명이 아니라,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는지를 얼굴에 담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승목은 <살인의 추억>부터 <헤어질 결심>, <무빙>, <닭강정>까지 오랜 시간 짧지만 강렬한 인물들을 맡아온 배우입니다. 10년이 넘는 연극 무대 경력을 바탕으로 쌓아온 연기라, 그가 등장하면 그 인물이 살아온 시간이 같이 스르륵 따라 들어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전에 리뷰했던 <데드라인>에서 그가 연기한 손규식이 재난의 한복판에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면, 건석은 정반대로 자리를 떠난 사람입니다. 남는 것과 떠나는 것, 두 개의 정반대 선택을 같은 배우가 같은 무게로 그려낸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저는 <데드라인>을 보고 이 영화를 이어서 봤는데, 같은 얼굴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 같아서 좀 멍했습니다. 이런 게 배우를 따라가며 보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이 부분에는 후반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얼굴이 잘려 나간 사진

 엄마 유선은 사진 속 할아버지의 얼굴을 전부 잘라냈습니다. 정희가 가진 단서라고는 그렇게 훼손된 사진뿐입니다.

 

 저는 이 이미지가 이 영화의 출발점을 소름돋게 정확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그 사람을 지우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워진 자리가 더 크게 남습니다. 잘려 나간 얼굴이 오히려 정희의 호기심을 키웠고, 결국 그 빈자리가 정희를 길 위로 밀어냈습니다.

 

 저도 미워하는 마음이 제일 진한 관심이라는 걸 점점 나이를 먹고 경험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아무렇지 않으면 사진을 자를 일도 없으니까요.

 

- 자기 탓이라고 믿는 아이

 정희는 자신이 태어난 날 할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에, 이 모든 불행이 자기 탓인 것만 같다고 느낍니다. 열여섯 살 아이가 지고 있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가족의 오래된 갈등 속에서 가장 나중에 태어난 사람이 그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 일은 생각보다 꽤나 흔합니다. 이 영화가 정희의 시선을 택한 이유도 여기 있을 것 입니다. 어른들이 오래 방치해온 문제를 결국 가장 어린 사람이 풀러 나선다는 것, 이 구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어릴 때 부모님께서 다툼이 있으시면 그 냉랭한 공기를 제 탓으로 돌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찌보면 그것도 일종의 폭력이 아니었나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손녀와 마주한 순간

 건석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손녀와 마주하게 됩니다. 오랜 세월 스스로를 가족에게서 떼어놓고 살아온 사람 앞에, 그 가족의 가장 어린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저는 이 만남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석은 정희를 처음 봅니다. 정희가 태어난 날 떠났으니 당연합니다. 자신 때문에 태어난 날부터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아이를, 그는 이제야 처음으로 마주합니다. 유승목은 이 순간에 감정을 크게 터뜨리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을 봉인해온 사람이 그 봉인을 풀 때는, 원래 그렇게 조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말이 없는 얼굴이 제일 시끄럽다는 걸 이럴 때 느낍니다.

 

- 제목이 뜻하는 것

 문워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뒤로 물러나는 춤동작입니다. 이 제목이 이 가족을 소름돋게 잘 설명합니다.

유선은 어른이 되었지만 사춘기에 멈춰 있고, 건석은 스스로 떠났지만 실제로는 계속 그 자리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앞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모두 제자리이거나 뒤로 물러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가족이 진짜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건, 정희가 뒤를 돌아보러 떠난 다음부터입니다.

 

 처음엔 제목이 무슨뜻인가 의아했다가 그 깊은 의미를 점차 알게 됐을때는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목만으로 이만큼 설명해버리는 영화가 흔치는 않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감독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는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4. 감상평

 

 이 영화는 성장 로드무비의 익숙한 틀을 따라갑니다. 아이가 길을 나서고, 사람들을 만나고, 무언가를 알게 되고 돌아옵니다. 새로울 것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조금 다른 지점은, 정희가 찾아 나선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어른들이 오래 미뤄둔 숙제라는 데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족의 색깔>이 떠올랐습니다. 두 작품 모두 가족이라는 것이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룹니다. 다만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한쪽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이미 흩어져 버린 가족을 다시 이어 붙이려는 이야기입니다. 만들어가는 일보다 되돌리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정희가 겪는 여정이 그대로 보여줍니다.

 

 건석이라는 인물을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그를 변호하지도, 단죄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떠난 사람에게도 떠나야 했던 사정이 있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슬며시 열어둡니다. 저는 이 태도가 진짜 좋았습니다. 가족 이야기에서 떠난 사람은 보통 나쁜 사람으로 정리되고 끝나는데, 이 영화는 그 손쉬운 정리를 1도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4,316명의 관객을 모았고 씨네21 전문가 별점은 5점에 머물렀습니다. 완성도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정희 역의 황지아가 장편배우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열여섯 살 아이의 시선을 붙들고 가는 힘만큼은 분명합니다.

 

 가족 중 누군가와 오래 연락이 끊겨 있는 분이라면, 혹은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과 궁금해하는 마음이 함께 있는 분이라면 이 94분이 마음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미움도 결국 관심의 다른 이름이라서, 우리는 미워하는 사람의 안부를 제일 자주 궁금해합니다. 앞으로 걷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뒤로 물러서고 있는 사람이 우리 가족 중에도 하나쯤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미뤄둔 안부 전화를 한 통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