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제목에 붙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이미 서늘한데, 거기에 하필 '아버지'가 딱 붙어 있으니 포스터를 보는 순간부터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전에 리뷰했던 <정말 먼 곳>,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에 이어 강길우 배우의 세 번째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이번엔 어떤 얼굴을 들고 나왔는지 아래에서 확인해보세요!

<목차>
1.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 강길우가 연기한 도치성이라는 인물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4. 감상평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025년 4월 2일 개봉한 최재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2022년 가을에 촬영을 마쳤지만 개봉까지는 몇 해가 더 걸렸습니다. <벌새>의 김근아 미술감독이 참여해, 인물의 생활 공간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과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소름돋게 정교한 공간 연출을 보여줍니다.
완벽하지만 틀에 박힌 삶을 사는 내과 의사 도치성 앞에, 어느 날 낯선 소년 신영재가 나타납니다. 스무 살 무렵 그가 팔았던 정자로 태어난 아이입니다. 영재는 자신의 하자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합니다. 치성은 책임 소재를 따져보자며 맞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채감과 동질감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그러던 중 영재를 17년간 키워온 법적 아버지 신동석이 등장하면서, 두 명의 아버지와 한 명의 아들이라는 기묘한 삼각관계가 시작됩니다.
- 배우 이찬유(신영재 역)
육상에 재능과 흥미를 느꼈지만 심장병으로 그 꿈이 통째로 꺾여버린 소년입니다. 방황 중에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가 손해배상을 요구합니다. 병이 유전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좀 쌩뚱맞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소년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 배우 양흥주(신동석 역)
영재를 17년간 키워온 법적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갔다는 사실에 깊은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낍니다. 치성을 찾아가지만 두 남자는 서로에 대한 자격지심과 경계심으로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 배우 강길우(도치성 역)
철저하게 계획된,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내과 의사입니다. 자신의 삶을 빡빡한 루틴 속에서 통제하는 인물이며, 그 통제된 삶에 남은 유일한 실수가 스무 살 때의 선택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인물 소개만 봐도 이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 뭐 하나는 부서지겠구나 싶으신 분들 많으실 것 입니다. 저도 처음엔 부성애 이야기려니 하고 틀었다가, 손해배상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완전히 다른 영화로 넘어가더라고요.
2. 강길우가 연기한 도치성이라는 인물
도치성은 통제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고 하루의 리듬이 정확하게 짜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는 집은 깔끔하면서도 어딘가 휑한 느낌이 드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미술감독이 만들어낸 이 공간 하나가 이 인물을 한 방에 설명해 줍니다.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정작 채워진 것이 없는 헛헛한 삶인 것입니다.
진짜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치성과 동석을 은근히 겹쳐 놓는다는 점입니다. 동석의 통제가 아들이라는 타인을 향해 뻗어 있다면, 치성의 통제는 자기 자신을 향해 있습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통제라는 방식은 같습니다. 두 아버지가 서로를 견디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 있을 것입니다. 상대에게서 자신과 닮은 무언가를 봤기 때문입니다.
강길우는 전에 리뷰했던 <정말 먼 곳>의 진우,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의 경일에 이어 이번에도 감정을 크게 터뜨리지 않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다만 앞선 두 인물이 조용한 사람이었다면, 치성은 조용함 자체가 방어기제인 사람입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성격이 아니라 오랫동안 만들어온 습관이라는 것을, 강길우는 흔들림 없는 표정과 소름돋게 절제된 말투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 표정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세 편을 나란히 보고 나니 이 배우는 감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감정을 참는 얼굴로 말을 거는 사람 같습니다. 아 이래서 참는 연기가 더 어렵다고들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이 부분에는 후반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1억 원의 청구서
영재는 치성의 집을 찾아가 대뜸 손해배상금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꿈이 좌절될 위기에 처했으니, 생물학적 아버지로써 병이 유전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저는 이 요구가 무례하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태어남에 동의한 적 없는 사람이, 자신을 태어나게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원치 않은 탄생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이 청구서 한 장에 담겨 있습니다.
계산서 한 장으로 시작되는 부자 관계라니, 웃프면서도 이 영화가 어떤 태도로 갈지 단번에 알려주는 장면이었습니다.
- 하자 리스트를 함께 체크하다
치성은 영재가 확실한 친자임을 확인한 뒤, 심장병의 근원이 자신이 아님을 분명히 하려 합니다. 두 사람은 이른바 하자 리스트를 함께 체크해 나갑니다.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진짜 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처음으로 가까워지는 방식이 대화나 식사가 아니라, 서로의 결함을 항목별로 검증하는 절차라는 것입니다. 의사인 치성에게 그것은 가장 익숙한 소통 방식이었을 테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무적인 절차를 통해 두 사람은 실제로 가까워집니다. 통제밖에 모르던 사람이 관계를 맺는 방법도 결국 통제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소름돋게 정확합니다.
저도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 괜히 쓸데없는 정보부터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여는 방식은 생각보다 촌스럽고 서툰 것 같습니다.
- 두 아버지의 충돌
동석이 치성을 찾아오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뒤엉킵니다. 17년을 키운 아버지와 유전자를 준 아버지가 마주 앉지만,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것은 자격지심과 경계심입니다.
누가 진짜 아버지인가라는 질문이 이 장면에서 가장 팽팽해집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두 사람 모두 아버지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했을 뿐이라는 것을 조용히 드러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누구도 편들 수가 없어 마음이 계속 무거웠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도 결국 사람이 짊어지는 것이라, 그 안에 빈자리가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헤어짐으로 완성되는 결말
영재 역시 결국 아버지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저는 이 결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에서 가족 이야기는 대체로 서로를 다시 껴안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소름돋게도 정반대로 갑니다. 놓아주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랑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 방향은 감독이 인터뷰에서 분명하게 밝힌 부분이기도 합니다. 많은 작품이 가족 간의 갈등을 화해의 서사로 풀어내지만, 자신은 반대로 이 관계를 끊어내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가족과 헤어질 때 비로소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붙잡는 결말보다 놓아주는 결말이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저는 이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4. 감상평
제목의 프랑켄슈타인은 흔히 오해하듯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 생명을 만든 사람의 이름입니다. 이 영화가 그 이름을 굳이 가져온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도치성은 자신이 만들어낸 생명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살아왔고, 어느 날 그 생명이 직접 찾아와 책임을 묻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신한 소재인 것 같으나 또 어떻게 보면 뻔한 스토리가 그려지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일본 영화인 <가족의 색깔>이 떠올랐습니다. 두 작품 모두 혈연이 곧 가족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룹니다. 다만 결론이 정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한쪽이 가족의 형태가 다양할 수 있다는 데서 답을 찾는다면, 이 영화는 아예 그 관계를 끊어내는 데서 답을 찾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울타리지만 누군가에게는 벗지 못하는 족쇄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화해라는 손쉬운 결말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조용히 증명해 보입니다.
강길우가 연기한 도치성은 이 세 인물 중 가장 변화의 폭이 큰 사람입니다. 통제로 완벽하게 방어해온 삶에 스무 살 시절의 실수가 걸어 들어오고, 그 균열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 삶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과정을 감정의 폭발 없이 조용한 흔들림만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배우가 지금까지 쌓아온 결이 이 인물에게 가장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인물을 보면서, 사람이 바뀌는 순간은 큰 사건이 아니라 아주 작은 금 하나에서 시작되는구나 하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는 씨네21 전문가 별점 6점을 받았고, 결핍을 지닌 세 인물이 자기 해방을 맞이하는 서사라는 평을 얻었습니다. 2026년 8월 현재 애플TV와 티빙 등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답답함을 느껴본 적 있는 분이라면, 그리고 화해로 봉합되지 않는 정직한 결말을 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이 97분이 꽤 오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어떤 관계는 붙들고 있을 때보다 놓아주었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는 걸, 이 영화가 조용히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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