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최승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스프린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포스터만 보면 딱 스포츠물 느낌이라 뻔할 것 같았는데, 막상 보니 예상과는 완전 결이 다르더라고요.
전 글에서 리뷰한 <이장>의 금희 배우, 공민정님이 이번엔 또 어떤 얼굴을 보여주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보세요!

<목차>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 공민정이 연기한 지현이라는 인물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4. 감상평
1. 영화 소개와 등장인물
2023년 5월 24일 개봉한 최승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에요. 데뷔작 <수색역>에 이은 작품으로, 2021년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화제를 모았고 예매 오픈 5분 만에 전석이 매진됐다고 하니 그 인기, 말 다했죠.
100미터 단거리 육상을 소재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둔 세 선수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한때 국내 최고 기록 보유자였지만 이제는 무소속으로 밀려나 은퇴만 남은 현수, 현재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정호, 유망주였지만 학교 육상부 해체 위기에 놓인 준서.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트랙 위에 다시 섭니다. 저는 이 설정만 봐도 마음이 벌써 안쓰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다들 각자의 이유로 이번이 아니면 안된다는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요.
- 배우 박성일(현수 역)
한때 트랙을 씹어먹었다고 표현할 만큼 잘나가던 단거리 선수였지만, 지금은 무소속으로 공설운동장에서 홀로 훈련하는 30대 노장 선수입니다.
- 배우 임지호(준서 역), 송덕호(정호 역)
임지호는 고교 랭킹 1위의 단거리 유망주 준서를, 송덕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선수이지만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정호를 연기했습니다.
- 배우 전신환(지완 역), 최준혁(형욱 역)
전신환은 준서의 육상부 코치이자 계약직 신분으로 정규직 전환을 바라는 지완을, 최준혁은 정호가 속한 실업팀의 코치 형욱을 맡았습니다. 조연들까지 저마다 사연 하나씩 품고 있어서, 저는 보는 내내 누구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 배우 공민정(지현 역)
현수의 아내이자 헬스 트레이너입니다. 홀로 트랙을 도는 남편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지만, 정작 그에게 마땅한 위로를 건네지 못해 갑갑해하는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유독 눈길이 갔던 이 인물, 지현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해요.
2. 공민정이 연기한 지현이라는 인물
지현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섯 인물 중 유일하게 트랙 위에 서지 않는 사람입니다. 현수, 정호, 준서는 저마다 기록과 순위, 자리를 두고 싸우지만, 지현에게는 그런 뚜렷한 목표가 없어 보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이 인물을 오히려 완성시켰다고 생각해요. 지현은 겉으로 보면 그저 현수를 응원하고 곁을 지키는 조력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갈등이 없는 사람은 없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 지는 싸움을 반복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뛰어들 트랙조차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응원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무력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공민정 배우도 영화 관련 인터뷰에서 이 지점을 직접 짚어낸 적이 있는데요, 다른 인물들은 저마다의 욕망과 갈등이 뚜렷한데 왜 이 캐릭터에게만 그것이 없느냐고 감독에게 되물었다고 합니다.
공민정은 이 인물을 목표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몫의 싸움이 트랙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 그려냅니다. 헬스 트레이너라는 직업 설정도 이 지점에서 의미가 생깁니다. 남을 훈련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훈련은 대신해 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이를 키워보면서 그런 생각을 가끔했던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하나에서 열까지 조금씩 알려 주지만 알려주기는 거기까지이고 결국에는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야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런 점에서 내가 결국에는 뭘 해줄수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3. 명장면, 명대사 소개
- 홀로 트랙을 도는 남편을 지켜보는 얼굴
현수는 지원도 소속팀도 없이 동네 공설운동장에서 혼자 훈련합니다. 지현은 그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지만,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응원의 말 몇 마디로는 부족하다는 걸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들에서 지현의 답답함이 현수의 것 못지않게 소름돋게 크다고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도 그 고통의 근본적인 해결에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위치, 그것이 이 인물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뛰는 사람만이 아니라 곁을 지키는 사람의 무게도 똑같이 무겁다는 걸,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 각자의 좁은 레인
영화는 현수, 정호, 준서 세 사람의 이야기를 유연하게 겹치고 연결합니다. 이들은 자리를 뺏어야 하는 사람과 지켜야 하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좁은 레인 위에서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현이 바로 이 구조의 확장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랙 위에 있지 않다고 해서 레인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지현에게는 남편의 곁을 지키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인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공평하게 비춰주는 시선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의미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4. 감상평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이면서도 승리의 쾌감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은퇴를 앞둔 노장, 정상의 자리가 불안한 현역, 팀이 없어질 위기의 유망주까지, 모두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기 위해 뜁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함께 뛰지는 않지만 나란히 서서 그 무게를 나누어 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스프린터라는 영화 제목만 보고 "아 이거 또 극적인 승부를 보여주면서 카타르시스를 채우게 해주는 그런 영화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었습니다.
또, 공민정 배우가 연기한 지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 영화가 스포츠 영화의 틀을 한 겹 넓힌다고 느꼈습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 선수의 곁을 지키는 인물은 응원과 격려의 기능으로써만 소비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공민정은 감독과 상의하며 이 인물에게 갈등도 욕망도 있어야 한다고 자청해서 요구했고, 그 결과 지현은 현수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자신만의 무게를 지닌 사람으로 남습니다. 배우가 직접 캐릭터의 빈틈을 알아채고 채워 넣은 드문 케이스라, 저는 이 인물을 볼 때마다 그 과정이 함께 떠올라서 더 애틋하게 보게 되더라고요.
이 영화는 7,680명의 관객을 모았고, 씨네21 전문가들에게 평균 6점대 후반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기존 스포츠 영화들이 놓친 지점을 짚어냈다는 평이 눈에 띕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좇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 지쳐 있는 분이라면,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지쳐가는 사람의 마음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이 영화, 조용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86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다 보고 나면 트랙 위와 트랙 밖 그 어느 쪽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마음 깊이 느끼게 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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