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2025년 9월에 개봉한 영화 <어쩔수가없다>, 그중에서도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만수'라는 인물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
포스터 카피가 언뜻 보면 자기소개서 마지막 줄 같은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시 읽으면 등이 서늘해지더라고요. 커다란 배롱나무와 주택을 배경으로 비장한 표정의 이병헌 배우가 서 있고,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아내 미리를 비롯한 인물들이 숨어 있어서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겨나는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2025년에 들고 온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살인 스릴러입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제가 계속 떠올린 건 칼이나 총이 아니라, 구조조정 통보를 받은 사람의 표정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범죄 때문이 아니라 그 범죄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잃는다는 게 단순히 월급이 끊기는 일일까요,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잃는 일일까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아래에서 같이 확인해보세요!
<목차>
1. 직장 상실이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몰아붙이는가
2. 자존감 붕괴가 어떻게 판단력을 무너뜨리는가
3. 박찬욱 연출이 이 이야기에 더하는 것
1. 직장 상실이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몰아붙이는가
주인공 만수(이병헌)는 제지 업계에서 25년을 일한 전문가입니다. 제지 업계란 종이와 펄프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산업을 말하는데,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축소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만수는 그 안에서 고도의 기술력을 쌓아온 사람이지만, 미국 투자자 주도의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자리를 잃습니다. 소위 말하는 짬에서 나오는 실력, 그러니까 25년치 경력이 통보 한 장에 정리되는 장면인 것이죠.
구조조정이란 기업이 비용 절감이나 효율화를 명목으로 인력을 줄이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제가 확 불편했던 건 만수가 처한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뉴스에서, 혹은 주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이 대목에서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느낀 분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건 만수가 당장 굶어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아내 미리(손예진)가 현실적인 대안도 제시합니다. "집을 팔고 아파트로 옮기자", "다른 일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만수는 그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처음에 저도 답답했습니다. 왜 저러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럴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나라도 저 말은 안 들렸겠다'는 생각이 계속 부딪혔습니다.
사람은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일하면, 그 일이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자기 정체성이 됩니다. 자기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규정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만수에게 "제지 전문가"라는 타이틀은 곧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였던 겁니다. 그 증거가 사라졌을 때 만수는 다른 방식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이야기는 그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을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사람은 밥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명함 한 장이 사라졌을 뿐인데 사람 하나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생각해본 것 같습니다.
2. 자존감 붕괴가 어떻게 판단력을 무너뜨리는가
만수가 세운 계획은 간단합니다. 자신이 지원하려는 회사의 채용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될 후보자들을 미리 제거하는 것입니다. 들으면 황당한 계획이지만 영화는 이걸 아주 천천히, 그리고 현실적인 질감으로 보여줍니다. 만수는 처음부터 냉혹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망설이고, 실수하고, 자신도 무서워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은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만수가 혼자 앉아서 계획을 정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평범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이 합리화를 거쳐 비정상적인 선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는 게 불편했습니다. 어찌보면 만수가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그 손놀림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장면으로 보여집니다.
저는 보면서 이 이야기가 한국에서만 통하는 얘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원작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도끼(The Ax)>입니다. 원작 자체도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인의 윤리관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다루는 작품인데, 박찬욱 감독은 그 핵심 주제를 AI 자동화와 대규모 구조조정이 일상이 된 2020년대 한국 사회로 옮겨왔습니다. 원작 소설의 영화화 이력을 보면 이미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도 각색된 바 있는데, 그만큼 이 이야기의 보편성은 시대와 국가를 넘습니다.
영화 안에서 만수의 심리 변화를 단계별로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 직장을 잃고 정체성 혼란이 시작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는 상태.
- 재취업 시도가 반복해서 실패하면서 분노와 무력감이 함께 쌓인다.
- 문제의 원인을 경쟁자로 돌리며 외부 귀인(실패를 자신이 아닌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는 심리)이 강해진다.
- 합리화가 완성되면서 극단적인 선택이 논리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 첫 번째 행동 이후에는 되돌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른바 매몰 비용 효과(이미 투자한 것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계속하는 심리)가 작동한다.
이 흐름이 무서운 이유는 각 단계가 별개로 보이지 않아서입니다. 연결고리가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저도 보면서 "나라면 어디서 멈췄을까?"를 생각했는데, 솔직히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답이 안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이 무너지는 데는 큰 사건 하나가 필요한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계단 몇 개면 충분하다는 걸 알려주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저 계단 앞에서 한 번쯤 멈춰 설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3. 박찬욱 연출이 이 이야기에 더하는 것
박찬욱 감독의 작가주의적 연출이란 감독 개인의 세계관과 미학을 작품 전반에 일관되게 담아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올드보이>(2003), <아가씨>(2016), <헤어질 결심>(2022)을 거쳐온 그의 스타일은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스타일이 장르적 쾌감과 훨씬 단단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오래 따라온 사람으로서, 이번 작품이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서늘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랙 코미디란 죽음, 범죄, 비극 같은 어두운 소재를 유머로 다루는 장르를 말하는데, <어쩔수가없다>는 이 장르의 교과서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웃기는데 편하게 웃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실제로 관람하면서 웃음이 나왔다가 바로 "내가 지금 뭘 보고 웃은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 불편함이 의도적이라는 게 느껴졌고, 그게 오히려 인상적이었습니다. 극장에서 혼자 웃다가 조용해지는 경험, 저만 한 건 아닐 것 입니다.
이병헌 배우와 손예진 배우의 조합도 영화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합니다. 두 사람이 연기하는 부부는 같은 위기를 겪으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미리는 현실적이고, 만수는 자존심에 묶여 있습니다. 이 차이가 갈등의 핵심이 되는데, 대화 몇 마디만으로 긴 결혼 생활의 무게가 느껴지는 연기를 두 사람이 해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부부 관계의 결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영화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이 작품은 그 점에서 꽤 잘 해냈습니다. 특히 손예진 배우는 화를 내지 않으면서 상대를 무너뜨리는 말투를 아주 잘 표현한 것 같아, 저는 그 장면들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러닝타임이 중반 이후에 체감상 조금 늘어지는 구간이 있고, 몇몇 장면에서는 이야기보다 연출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해외 비평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 걸 보면 저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이건 치명적인 결함이라기보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개성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에 가깝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직장을 잃을 때 정확히 무엇을 잃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상실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이 개인의 멘탈 문제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사람의 25년을 통보 한 장으로 끝내는 구조라면, 국가적 차원에서도 뭔가 답을 내놔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쩔수가없다>는 그 질문에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답 대신 거울을 하나 쥐여주려 했다고 봅니다. 만수를 손가락질하게 만드는 대신, 거기 비친 얼굴이 낯익어서 불편해지도록 설계된 영화라는 뜻입니다. 직접 보시기 전에 줄거리를 많이 알고 가지 않길 권합니다. 만수의 선택이 어긋날수록 쌓이는 긴장감은, 아는 상태에서 보면 절반이 날아갑니다. 2026년 9월 현재 시점에서 돌아봐도, 2025년 한국 영화 중 이만큼 사람을 오래 앉혀놓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이 곧 나 자신이 되지 않도록, 일 말고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몇 개쯤 만들어두며 살고 싶습니다. 물론 막상 그 통보를 받으면 저도 만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부터 한 칸씩은 만들어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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